<30373134BFCFB7E15FB9CCB1B9C7D02034302D312E687770> 【연구논문】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 나타난 백인 남성성*1) 정진만 (영남대학교) 1. 서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가 감독하 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주연한 󰡔레버넌트: 죽 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2015)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2 개 부문에 수상후보로 올라 3개 부문(감독상, 남우주연상, 촬 상)의 상을 받고 골든 글로브에서도 3개 부문(감독상, 남우주연상, 드라마 부문 작품 상) 수상을 함으로써, 이 화가 중들에게 상당한 향력과 호소력을 지녔음을 잘 보여준다. 이 화는 19세기 전반기에 두했던 ‘마운틴 맨’(mountain man) 계층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운틴 맨’은 서부개척사에 서 19세기 전반기에 극서부(Far West) 지방이나 변경지 에서 주로 비버 등을 사냥하여 그 가죽을 수집해 유럽의 시장에 유통시켰던 사냥꾼들, 덫 사냥꾼들(trappers), 상인들(traders)을 통칭하는 것으로서, 이들은 특정한 * 이 연구는 2016년도 남 학교 학술연구조성비에 의한 것임. 264 정진만 모피회사에 고용되기도 하고 자유롭게 홀로 활동하기도 했다. 󰡔레버넌트󰡕 는 마운틴 맨 가운데 실존인물인 휴 글래스(Hugh Glass)(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 분)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서부에서 자연과 맞서며 동료 마운 틴 맨들과 북미원주민들과 맺는 관계들을 상화한다. 우선 이 화는 얼 핏 보기에 원주민들의 입장에 서며 이들을 호의적인 태도로 그린 것처럼 보인다. 이 화는 아리카라족(the Arikaras) 추장의 입을 통해 서구 유럽 인들이 북미 륙에 와서 원주민들의 땅과 동물들을 훔쳐간 역사를 고발 한다. 그리고 이 화는 백인들에게 여전히 따듯하게 하는 원주민을 그 린다. 예컨 , 글래스가 동료들에게 버림을 받아 한 겨울 깊은 산 속에서 사경을 헤맬 때, 포니족(the Pawnees)으로 합류하려던 한 원주민은 그의 깊은 상처를 치료해주며 험한 겨울 폭풍에 동사할 수 있었던 그를 살려 준다. 이 화는 그런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원주민을 백인들이 잔인하게 하는 것으로 그림으로써, 당시 원주민들에 한 백인들의 행동을 고발 하며 반성하는 듯하다. 글래스를 구해주었던 이 원주민은 이후 프랑스 군 인들에게 붙잡혀 죽어 나뭇가지에 그의 시신이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프 랑스군들은 그의 목에 “야만인”이라는 팻말을 걸어놓는 “야만적인” 행동 을 한다. 아이러니컬한 이런 재현을 고려하면 분명 이 화가 원주민의 온정을 따듯하게 그리며 원주민에게 행했던 서구유럽 백인들의 폭력을 비판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화는 이런 비판적인 재현에도 불구하고 그 긍정적인 측면 을 반감시키는 또 다른 측면을 역시 제시하고 있다. 이 화는 여전히 인 종의 차원에서 백인중심적이고 젠더의 차원에서 남성우월주의적이며 이것 이 절묘하게 국가주의(nationalism)와 연루되어 드러난다.1) 이런 점에서 1) 비록 이 화가 멕시코 출신의 감독에 의해 제작되었지만 화제작에 감을 준 원 작인 󰡔레버넌트: 복수의 소설󰡕(The Revenant: A Novel of Revenge)(2002)이 미국 행정부의 한 고위관료, 즉 미국 통상 표부(USTR)의 부 표이면서 동시에 국제무 역기구(WTO)의 미국 사 던 마이클 푼케(Michael Punke)에 의해 씌여졌다는 점 도 고려되어야 한다.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65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 가운데 하나인 20세기 폭스에서 제작된 이 화는 미국의 건국이후 문학과 예술, 그리고 다양한 담론 속에서 형성되 어온 인종주의, 남성중심주의, 국가주의의 또 다른 변형이라는 한계를 드 러내고 있다. 더불어 이런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화가 21세기에도 미 국의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며 커다란 인기를 끌어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 브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런 맥락에서, 이 글은 화 󰡔레버넌트󰡕가 글래스를 초인적 인물로 형상화 하면서 국가적, 인종적, 젠더적 정치학에 기초한 강한 백인 남성성의 신 화를 구축해 관객들로 하여금 동일시의 욕망을 부추기는 사례임을 밝히 려 한다. 이 화는 마운틴 맨을 신화적으로 구성해내는 상미학에 내재 한 미국의 정체성 구축과 욕망에 해 역사-문화적 맥락에서 다시 숙고하 고 심문해볼 기회를 마련한다. 2. 인종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백인과 원주민의 복합적 관계 󰡔레버넌트󰡕의 웅인 글래스는 친원주민적인 백인으로 재현된다. 글래 스는 포니족 원주민 여성과 결혼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 혼혈인 아들 호 크(Hawk)(포레스트 굿럭 분)가 있다. 글래스는 그런 아들을 다독여주는 인자하고 “헌신적인”(devoted)(Lane, “Wilder West”) 아버지로 그려진다. 글래스의 태도는 혼혈인에 한 다른 백인들의 홀 , 비하의 태도와 조 된다. 특히 존 피츠제럴드(John Fitzgerald)(톰 하디 분)는 글래스의 아들 을 “잡종놈”(half-breed)이라 멸시하고 그의 어머니가 속한 포니족을 야만 인이라 비하한다. 이 화가 글래스와 다른 백인들이 원주민을 하는 태 도에 차이가 나도록 그리는 것은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글래 스가 곰의 공격을 받아 치명적 상처를 입고 동료 마운틴 맨들로부터 버 림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수족(the Sioux)의 침입을 받아 남쪽으로 포니 266 정진만 족과 합류하기 위해 가던 한 원주민이 그를 도와주고, 그 가운데 글래스 는 원주민과 친 해진다. 내리는 눈을 혀로 받아먹으려는 이 원주민의 장 난스런 몸짓을 글래스도 따라하면서 서로 친 감을 갖는다. 반면, 다른 프랑스 백인들은 그 원주민을 붙잡아 죽이고, ‘야만인’(savages)이라 적힌 팻말을 목에 걸어놓는다.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통칭해 비하하고, 피츠 제럴드가 글래스의 아들을 ‘잡종놈’(half-breed)이라고 부르며 비하하는 것은 로빈 톨마크 라코프(Robin Tolmach Lakoff)에 따르면 타자를 비하 하는 용어로 통칭해 부르며 전형화시키는 예인데, 이것은 타자를 “온전히 인간으로 진지하게 간주할 가치가 없고 왜소하고, 약하고, 어린아이와 같 은”(as smaller, weaker and childlike—not worth taking seriously as fully human) 상으로 느끼게 한다(130). 즉, 이런 명명행위는 ‘우월 감’(superiority)과 ‘통제’(control), 지배의식을 고취시키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서 피츠제럴드 같은 미국 마운틴 맨이나 프랑스 군인들의 태도를 보면 당시 백인들이 유럽인이든 미국인이든 모두 똑같이 백인 우월주의 에 기초해 원주민들을 야만인으로 멸시하는 인종주의적 태도를 가졌음이 잘 드러난다. 19세기 전반기 당시 일종의 ‘사이-경계 지역’(in-between space)인 변 방지역이나 극서부 지방에서는 이 화의 주인공인 글래스 같은 마운틴 맨들이나 그 변경지 에 살던 백인들이 원주민 여성들과 결혼하는 사례 들이 많이 있었는데, 당시 서부를 여행하면서 이런 현상을 목격하는 백인 들은 열등한 인종인 원주민들이 백인들의 피를 오염시키고 퇴보하게 만 든다고 여기며 변경지 혼혈인들을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극서부지방인 애스토리아(Astoria) 탐험사를 서술하고 본인 스스로 1832 년에 오클라호마 변경지역을 여행했던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은 미국의 백인들과 원주민 같은 유색인들의 인종교혼(miscegenation)을 부 정적으로 그리면서, 인종간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에 한 동시 인의 불 안과 공포의 정서를 잘 반 한 작가들 가운데 하나이다. 어빙은 비록 마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67 운틴 맨들을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모방할만한 인물들로 찬사하긴 하면서 도2) 이들의 인종교혼이 상서롭지 못한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자신 의 염려를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애스토리아󰡕(Astoria)(1836)에서 어빙은 마운틴 맨들과 원주민들 사이의 관계로 혼혈인의 수가 증가하는 것에 해 다음과 같이 표명한다. 지질학에서 말하는 새로운 형성, 즉 문명인과 야만인의 후손으로서의 “부스러기”와 “암설”이 뒤섞인 새로운 잡종이 여기[극서부 지방]에서 생 길지 모른다. 망해서 거의 소멸된 부족들의 잔재, 떠돌아다니는 사냥꾼들 과 덫사냥꾼들, 스페인과 미국의 변방에서 온 무법자들, 모든 계급과 나 라들에서 온 모험가들과 무법자들의 후손들이 매년 문명사회의 품에서 황야로 쏟아져 나왔다. (211) Here [in the wilderness of the far West] may spring up new and mongrel races, like new formations in geology, the amalgamation of the “debris” and “abrasions” of former races, civilized and savage; the remains of broken and almost extinguished tribes; the descendants of wandering hunters and trappers; of fugitives from the Spanish and American frontiers; of adventurers and desperadoes of every class and country, yearly ejected from the bosom of society into the wilderness. 여기에서 “암설”(abrasion)은 “깨지고 망가진 잔재들”(the remains of anything broken down or destroyed)(OED)을 의미하는 “부스러 기”(debris)와 같은 의미로 쓰 다. “부스러기”는 또한 “버려진 어떤 것, 폐기물”(something discarded: rubbish)(The Merriam-Webster’s)을 뜻하 기도 한다. 어빙의 시선에서 혼혈인은 쓸모없는 폐기물과 같은 존재이다. “새로운 잡종들”(new and mongrel races)(211)은 “망해서 거의 소멸된 2) 어빙의 여행서사는 19세기 전반기 당시 유럽(특히 국)의 모피 사냥꾼들을 귀족 같은 사람들로 채색하는 반면 미국의 마운틴 맨들을 자국의 민주주의와 결부시키는 국가주의적 성격을 드러낸다(정진만 215-24). 268 정진만 부족들”(211)과 백인 사냥꾼들 혹은 무법자들간의 달갑지 않은 접촉에 의 해 생긴 퇴화된 자손들이다. 바꿔 말해서, 어빙은 혼혈인을 황야에서 사 라져가는 인종(원주민)과 문명세계 출신의 무법자들간의 인종교혼의 결과 로 생긴 폐기물같이 비천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어빙이 백인/유색인 의 인종교혼에 두려움과 불안을 표명하는 것은 󰡔보네빌 위의 모험󰡕 (The Adventures of Captain Bonneville)(1837)에서도 반복된다(372-73). 어빙에 따르면, 인종교혼의 자손들은 원주민 선조들의 야만성을 그 로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원주민의 이런 야만적 성격은 백인이 지닌 문명 의 속성을 지워버린다. 그가 보기에 혼혈인은 국가의 문명을 더 진척시키 는데 아무 도움이 안되는 부정적이고 심지어 끔찍하기까지 한 상일 뿐 이다. 어빙의 경우에서 보듯이 19세기 전반기 당시 원주민과 혼혈인에 한 백인들의 일반적인 태도가 지극히 부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버넌트󰡕 의 주인공인 글래스는 원주민과 혼혈인에 한 태도가 남다르다. 글래스 는 사경을 헤매는 힘든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죽은 원주민 아내와 혼혈 아들의 환 을 본다. 한 평자가 이 화를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을 위해 겪는 고난에 관한 이야기”(a tale about suffering for the sake of love—the love between father and son, husband and wife)(Díaz-Gilbert)라고 바라보듯이, 이 화는 아내와 아들을 잊지 못하 는 글래스의 사랑을 그리는 듯하다. 특히 글래스는 혼혈 자식에 한 애 틋한 부정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앤소니 레인(Anthony Lane)은 “전체 플롯이 호크에 한 글래스의 부성적 애착에 의해 그 추진력을 얻는 다”(the whole plot is impelled by Glass’s paternal loyalty to Hawk)(“Wilder West”)고 까지 언급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글래스의 생 존력의 원천이 죽은 아들에 한 복수심임을 보여주는 것은 호크에 한 그의 무한한 사랑을 시사한다. 정지혜에 따르면, “(보통 인디언이라 불리 던)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와 정을 나눈 휴 글래스와 그 피가 섞인 그의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69 아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백인 ‘마초’ 남성들에게는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런 의미에서 휴 글래스는 전형적인 백인 남성 무리와는 다르다. 휴 글래스와 호크는 미국인도 아메리카 원주 민도 아닌 경계 밖의 사람들이다”(「운명을 거슬러 살아남아라」). 여기에 서 필자는 글래스가 다른 미국의 백인들과 달리 친원주민적 존재로 그려 진다는 정지혜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그가 미국 백인 남성 무리들과 달 리 다른 원주민들이나 혼혈인들처럼 “경계 밖의 사람들”이라는 해석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글래스는 여타의 다른 백인들처럼 여전히 경계 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 화는 인종적 경계를 초월 해서 가족중심적인 맥락에서 인간적인 사랑을 그린 것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엔 인종의 문제와 젠더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루되 어 있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화에서 글래스가 혼혈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것으로 그려지 는 것은 마이클 킴멜(Michael Kimmel)의 표현을 빌면 19세기 인종차별 에 한 현 미국 “백인들의 속죄의 추구”(a search for redemption for white guilt)(66)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 19세기 마 운틴 맨들을 소재로 한 이 화에서 우리가 잊어선 안되는 것은 당시 현 실에선 글래스와 같은 마운틴 맨들이 ‘인디언 파이터’(Indian fighter) 다 는 점이다. 실제로 글래스도 1823년 아리카라족 전사들과 싸우다 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1833년경의 그의 죽음도 이 부족과의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1823년 6월 2일에 아리카라족과의 전쟁에서 사망한 존 S. 가드너(John S. Gardner)의 부모에게 글래스가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는 원주민들을 지극히 기만적인 야만인들로 여겼다. 이 야만인들은 아주 기만적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친구로서 교역을 했지만, 폭우와 천둥이 지난 다음 날이 밝기 전에 그들은 우리에게 들이 닥쳤고 많은 이들이 다쳤습니다. 제 자신도 다리에 총상을 입었고요. 우 270 정진만 리의 고용주인 애슐리는 그 배신자들이 마땅히 처벌받을 때까지 이 지역 에 머무를 것입니다. (“Hugh Glass Letter”) The savages are greatly treacherous. We traded with them as friends but after a great storm of rain and thunder they came at us before light and many were hurt. I myself was shot in the leg. Master Ashley is bound to stay in these parts till the traitors are rightly punished. 이런 진술은 글래스도 원주민에 한 경계와 증오가 상당했음을 보여 준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글래스 같은 마운틴 맨 계층은 19세기 전반기에 서 부의 원주민들의 토에 들어가 비버를 사냥하여 모피를 수집해 가져와 유럽시장에 판매하게 된다. 화의 첫 장면은 마운틴 맨들이 비버 등의 가죽을 벗겨 모피 가죽을 처리하는 과정을 잠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 피채집 과정에서 마운틴 맨들이 서부 진출의 활로를 개척하게 되고 이 개척이 향후 미국 백인들이 서부로 이민을 가 정착하는 시발점이 된다 (Aneja and Rothman). 이런 점 때문에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마운 틴 맨들이 서부로 진출한 것은 재앙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마운틴 맨들은 서부에서 그곳의 원주민들과 빈번한 전쟁을 치르게 되고, 󰡔레버넌트󰡕도 아리카라족과 백인 마운틴 맨들과의 전쟁을 통해 이런 점 들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긴 한다. 󰡔레버넌트󰡕의 첫 장면은 모피회사에 고 용된 백인 마운틴 맨들과 아리카라족간의 전쟁으로 시작된다. 이 화는 역사적으로 백인이 원주민의 토로 침범해 들어가 이들의 자원을 앗아 가며 백인의 토팽창을 위한 루트를 개척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화에서 모피사냥의 팀을 이끌었던 자는 앤드류 헨리(Andrew Henry)(돔 널 글리슨 분)이다. 그는 납 광산을 소유하고 있던 윌리엄 헨리 애슐리 (William Henry Ashley)와 함께 향후 서부 팽창의 중요한 루트를 개척 한다. 글래스의 서신에서 언급된 애슐리는 민병 위로 명성을 얻기 시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71 작해서 준장의 위치까지 승진한 인물이며, 1812년 전쟁이 끝나 더 이상 탄약의 수요가 크지 않자 탄약제조사업을 접고 세인트루이스로 가서 토 지투기자가 된다. 그리고 그는 1822년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인 앤드류 헨리와 함께 모피무역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한다. 애슐리 장군은 󰡔관보와 중광고자󰡕(Gazette and Public Advertiser)를 통해 1822년 2월에 미주 리 강 상류로 올라갈 모험심 가득한 젊은이들을 모집하는 광고를 낸다 (Goetzmann 105). 이 광고를 보고 모인 마운틴 맨들과 애슐리는 미주리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옐로스톤 강 입구에 사냥의 근거지를 마련한다. 이 모험은 로키산맥을 가로질러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되고, 향후 이 길을 통해 미국의 모험가들과 이민자들이 태평양까지 가로질러 갈 수 있 게 된다(Goetzmann 105). 󰡔레버넌트󰡕의 주인공이자 마운틴 맨인 글래스 와 더불어 전설적인 마운틴 맨 제더다이어 스미스(Jedediah Smith)가 가 담했던 탐험, 즉 1822년부터 1825년에 걸친 애슐리의 극서부지방 탐험은 애슐리가 과거에 졌던 빚을 모두 청산하고 부자가 되게 해주었을 뿐 아 니라 로키산맥 중앙부 전체가 향후 모피무역을 위해 길이 열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Goetzmann 124). 그가 거느린 마운틴 맨들이 사우스 패스(the South Path)를 개척한 것은 이후 서부로 백인들이 거 이주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를 마련한 것으로서, 마운틴 맨이 서부로의 팽창에 기여한 바를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윌리엄 H. 고츠만(William H. Goetzmann)에 따르면, “무엇보다 중요한 점으로서, 애슐리와 그의 휘하 의 남자들은 모피무역업자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민자들을 위해 서부 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기 시작했다”(Of prime importance, Ashley and his men had begun to point the way West for American emigrants as well as fur traders)(129). 󰡔레버넌트󰡕에서 글래스를 버리고 도망가는 피 츠제럴드와 함께 있던 어린 마운틴 맨 제임스 브리저(James Bridger)(윌 폴터 분)는 1824년 그레이트 솔트레이크(the Great Salt Lake)의 발견자 로 알려져 있고, 서부에 한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Goetzmann 272 정진만 119-20). 고츠만에 따르면, “1824년은 서부탐험사, 특히 로키산맥 중앙부 탐험사에 가장 중요한 해 는데”(1824 had been a most important year in the history of Western exploration, especially in the Central Rockies)(120), 브리저도 서부개척에 커다란 기여를 한 마운틴 맨들 가운 데 한 사람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볼 때 글래스 같은 마운틴 맨들은 서부로의 토팽 창에 지 한 공헌을 했으며, 실제로 글래스는 애슐리 장군의 1823년 탐 험팀(그와 앤드류 헨리가 주도)에 합류하여 활동한 마운틴 맨이자 인디언 파이터 다. 이들은 서부를 단순히 황야, 원주민들의 은신처, 방 한 사냥 감이 있는 곳으로만 보지 않고 백인들이 이주해서 살아가고 번창할 장소 로 보았던 것이다. 이들의 서부 개척은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원주민들과 의 잦은 전쟁을 유발한다. 예컨 애슐리 장군이 거느리는 마운틴 맨들은 1823년 6월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이들이 사냥에서 거두어들인 모피를 싣고 가던 보트가 미주리 강 상류에서 아리카라족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 전쟁으로 80여명의 마운틴 맨들 가운데 덫사냥꾼 14명이 목숨을 잃는 다(Goetzmann 111, 138). 󰡔레버넌트󰡕의 첫 장면에서 마운틴 맨들과 아 리카라족들간에 벌어지는 전쟁은 바로 이 역사적 사건을 재현한 것이다. 애슐리가 거느린 마운틴 맨들 중에 인디언 파이터로서 걸출한 인물들이 바로 이 화의 주인공인 글래스를 비롯해 제더다이어 스미스, 윌리엄 서 블렛(William Sublette), 제임스 클라이맨(James Clyman), 에드워드 로스 (Edward Ross) 등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로 미국의 마운틴 맨들이 서부에서 비버를 사냥해 모피를 가져가는 상황에서 원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졌고, 양측에 많은 인 명 손실이 있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이 화의 웅인 글래스는 원주민과의 관계에서 너무 낭만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 는 당시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글래스 같은 미국의 마운틴 맨들이 원주 민과 결혼관계를 유지한 데에는 경제적이고 실리적인 이유가 컸다는 점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73 을 간과해선 안된다. 당시 마운틴 맨들은 종종 “인디언 여자의 남자 들”(squaw men)이라 불리면서 백인/원주민의 경계를 흐려놓았는데,3) 글 래스와 같은 마운틴 맨들이 원주민 여성과 결혼하는 동기는 낭만적인 것 이 아니라, 원주민 아내가 속한 부족과 경제적 교류와 거래가 용이하고 그 부족 사냥터에서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Swagerty 164). 그러나 󰡔레버넌트󰡕에선 이런 현실들이 그려지지 않는다. 고츠만은 애슐리 장군이 “앤드류 잭슨적인 상업적 벤처를 하는 원형적 인물”(the archetype of Jacksonian merchant adventurer)(109)이었음을 지적한다. 애슐리 장군과 그의 휘하에 있던 마운틴 맨들은 문명세계를 혐 오하며 자유를 찾아 숲으로 가는 낭만적인 웅들이라기보다 돈을 벌겠 다는 세속적 야심으로 가득 차 서부로 뛰어들었던 “미래의 자본가들”(an expectant capitalist)(Goetzmann 107)이다. 󰡔레버넌트󰡕에서 피츠제럴드는 돈을 벌어서 땅을 사고 싶어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것은 비단 “돈에 만 목적이 있는”(mercenary)(Truitt) 피츠제럴드 한 개인의 물질적 탐욕이 아니라 당시 마운틴 맨들이 극서부 지방에서 목숨을 건 모험을 한 가장 큰 동기가 된다. 피츠제럴드 같은 마운틴 맨들의 시선에서 서부의 황야는 한 두 해만 고생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장소로 여겨졌던 것이다. 여 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글래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혼혈아들을 통해 백인/원주민의 관계가 친화적이고 낭만적으로 처리되는 바로 그 지 점에서 백인/원주민의 경계짓기가 역설적으로 더욱 강화된다는 점이다. 글래스는 사경을 헤매면서 그의 죽은 아내를 떠올린다. 이것은 원주민 아 내를 애틋하게 그리며 잊지 못하는 백인 남편의 사랑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 글래스의 아내는 자끄 라깡(Jacques Lacan)의 용어를 빌면 ‘물’(the Thing)과 같다. 라깡의 논의에서 ‘물’은 주체가 다시 찾을 3) 마운틴 맨들이 백인 아닌 유색인과 결혼한 것에 한 통계적 연구로는 윌리엄 R. 스와거티(William R. Swagerty)를 참조하라(164-70). 그에 따르면, 초혼인 마운틴 맨 312명 가운데 106명, 즉 38.9퍼센트가 원주민 여성과 인종교혼을 했다. 274 정진만 수 있다고 상정하는 욕망의 상이지만 궁극적으로 주체는 그것이 상실 된 상이라는 것만 확인할 뿐이다(52). 이 ‘물’은 글래스의 욕망의 상 이자 원인이지만 궁극적으로 그가 다가갈 수 없는 불가능한 상인 것이 다. 화 속에서 이 상은 글래스의 아내의 죽은 몸의 가슴에서 나오는 한 마리의 새로 형상화되며, 이 새가 하늘로 날아가는 것은 그녀의 혼 이 떠나가는 것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글래스의 아내가 접근 불가능한 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서, 이 상은 이 화에서 아 름다우면서도 불가능한 욕망의 상으로 승화된다. 현실의 상을 실재계 의 불가능한 상으로서의 ‘물’의 지위로 고양시키는 라깡적 의미의 ‘승 화’(sublimation)(112)가 󰡔레버넌트󰡕에서 미학적으로 작동하고, 이런 미학 적 승화는 ‘거리’(distance)를 전제로 한다. 이 ‘승화’는 주체와 그 승화된 상간의 건널 수 없는 거리를 분명한 전제조건으로 하는 욕망의 처리방 식인 것이다. 이것은 백인/원주민 사이에 여전히 건너기 어려운 심연으로 서의 인종간의 경계가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재현한다. 글래스의 죽은 아들 호크도 그의 아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된다. 호크 도 화 속에서 피츠제럴드에게 살해되어 ‘불가능한 상’이 된다. 아버 지인 글래스는 죽은 아들의 입에 풀 같은 것을 넣어주어 그의 죽음을 애 도한다. 사랑했던 사람을 상실한 것에 한 반응으로서의 이 애도는 주체 와 상간의 닿을 수 없는 거리를 전제로 한다. 비록 이냐리투 감독이 상미학적으로 아름답게 처리하긴 했지만 이 화가 백인/원주민 사이의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드러내는 것은 원주민이 “사라져가는 사람들”(Vanishing People)이라는 19세기 당시의 관습적 지 혜(conventional wisdom)를 잘 반 하고 있다. 당시 미국의 백인들은 원 주민들이 백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으며 북미 륙에서 분명 운명 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19세기의 이런 인식이 여전히 21세기 의 이 화에서 무의식적으로 반 되는 듯하다. 인종간의 건널 수 없는 경계를 긋고 그 경계를 다시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이 화는 비록 주인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75 공 글래스가 친원주민적인 백인으로 그려지긴 하지만 여전히 인종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3. 젠더의 차원에서 부각되는 미국 백인남성의 강인함 󰡔레버넌트󰡕는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인종의 정치학이 내재된 화인 데, 이 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마운틴 맨 신화를 통해 미국 백인의 남성다움의 이상과 욕망을 구현함으로써 젠더 정치학과 분리될 수 없는 문화적 형성물이 된다. 이 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백미는 글래스가 회 색 곰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다. 깊은 상처를 입고 곰의 희생물이 되는 이 끔찍한 장면은 남성 주체성의 위기를 재현한다. 다시 말해서, 이 외상 적 장면은 심리적으로 남성이 남근을 상실해 육체적 차원 뿐 아니라 심 리적 차원에서 나약하게 되고 여성화될 수 있는 사태를 상연하면서 프로 이트의 용어로 일종의 ‘거세불안’(castration anxiety)에 호소한다. 그러면 서 이 화는 글래스의 불사신 같은 생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끌어들여 남성의 힘(male potency)을 재확인하여 남근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혹은 판타지)을 구축하는 계기로 만든다. 스테파니 재커렉(Stephanie Zacharek)이 󰡔타임󰡕(TIME)의 화평에서 표현한 로 디카프리오가 연기 하는 글래스는 “고결하고 불굴의 정신을 가진 남자”(a man of principles and fortitude)로서 사자의 세계에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의 남성적 강인함을 지닌다. 이냐리투 감독은 데이비드 피어(David Fear)와의 인터 뷰에서 자신이 이 화를 만들 때 “회복되는 힘과 인내를 들여다본다는 생각에 관심이 있었다”(I was interested in the idea of looking into resilience, endurance)(Fear 24)고 말한다. 이것은 감독이 이 화를 제작 하면서 남성적 강인함이라는 믿음과 가치를 표현하고 싶었음을 보여준다. 디아즈-길버트(Díaz-Gilbert)가 이 화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276 정진만 인내하는 그[글래스]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his unrelenting will to endure unimaginable suffering)(“The Decline”)를 그린 화라고 호평하 는 데에서 드러나듯이, 감독의 바람 로 이 화는 미국 백인 남성이 나 약해지는 것에 한 불안, 혹은 거세불안을 해소하고 남성적 강인함을 진 리처럼 속화하려는 욕망을 반 하고 동시에 강화시킨다. 화에서처럼 실제로 글래스는 1823년 현재의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 미주리 강 지류인 그랜드 리버(the Grand River)의 한 분기점에 서 곰의 공격을 받는다. 이곳은 포트 카이와(Fort Kiowa)에서 북서쪽으 로 200마일(약 320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그는 이 곰과의 사투에서 큰 부상을 당하지만 죽지 않고 카이와 요새까지 약 6주에 걸쳐 살아 돌 아오는 초인적 생존력을 보여준다. 이 화 속에서 글래스가 동사하지 않 기 위해 방금 죽은 말의 내장을 꺼내고 그 안에 들어가 밤을 지내는 장 면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며 관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즉, 화 속 에서 글래스는 놀라운 방식으로 죽지 않고 버티는 불사조 같은 존재로 신화화된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revenant)라는 화 제목이 이를 잘 말 해준다. 글래스가 곰과 싸워 살아남은 이야기는 당시에 유명해서, 19세기 전반 기 여행서사에서도 그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1832년에 어빙은 현재의 오클라호마 지역을 여행했는데, 이 때 전해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 초원 에서의 여행󰡕(A Tour on the Prairies)(1835)에서 역시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글래스는 회색곰의 습격을 받은 후 “작은 물고기와 개구리를 먹 으며 스스로에 의지해 견뎌냈는데”(he supported himself by small fish and frogs)(159), 이것은 글래스의 자력의존(self-dependence)을 잘 보여 주는 부분이다. 이 이야기는 당시 어빙과 함께 동행하며 여행한 헨리 리 비트 엘스워스(Henry Leavitt Ellsworth)의 󰡔 초원에서의 워싱턴 어빙, 혹은 1832년 남서부지방 여행서사)(Washington Irving on the Prairie: Or a Narrative of a Tour of the Southwest in the Year 1832)에서 훨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77 씬 더 상세하게 언급된다. 엘스워스는 글래스에 한 이야기를 빈 위 (Captain Bean)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하는데, 󰡔레버넌트󰡕와 다소 차이가 있는 엘스워스의 이 이야기에 따르면, 미주리 강 상류에서 애슐리 장군의 사냥꾼들의 총에 맞은 회색 곰이 공격해 글래스는 큰 부상을 당한다. 피 츠제럴드와 브리저는 글래스가 회복될 때까지 있어주거나, 아니면 그가 죽으면 잘 매장해줄 임무를 띠고 200달러를 받기로 한 후 남게 된다. 그 런데 그를 돌보아 주기로 약속했던 자들이 그를 버리고 가버린다. 글래스 를 버린 자들은 후에 팀에 합류해, 글래스의 죽음에 해 미리 꾸며낸 거 짓말을 한다. 그리고 이 둘은 보상금을 나눠 가진다. 이후 글래스가 생존 해 돌아온 것이 알려지자 그를 버린 피츠제럴드와 브리저는 달아난다. 글래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했던 어빙에 따르면, 곰의 거 한 발톱은 “인간의 머릿가죽보다도 명예로운 전리품”(a trophy more honorable than a human scalp)(A Tour 158)이다. 화에서 브리저는 글래스를 공 격했던 곰의 발톱을 갖고 만지작거린다. 이에 피츠제럴드가 그 발톱을 가 진다고 글래스처럼 되는 것은 아니라고 브리저에게 말하고, 브리저도 그 발톱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인정하며 글래스의 가방에 그 발톱을 넣어준다. 여기에서 곰의 발톱은 거 한 힘을 가진 자연의 동물과 맞닥뜨 려 그 상을 정복하고 지배한 자의 힘과 용기를 보여주는 수렵 기념물 이며 징표이다. 이 곰의 발톱은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면 ‘연물’(fetish)이 되어 거 한 자연적 상의 힘에 한 숭배를 나타내며 동시에 그 거 한 힘이 이 발톱을 소유한 자에게 옮겨진다는 환상을 가져다주는 사물이 다. 글래스의 경우처럼 거 한 곰과 싸워 견뎌낸 것은 생존자의 힘, 용기 를 입증하면서, 더불어 심리적으로 결코 남근이 거세되지 않는다는 믿음 과 판타지를 유지시켜줄 수 있다. 󰡔레버넌트󰡕에서 글래스의 역을 담당한 디카프리오는 이 화가 “자연 을 정복하고 극복해 살아남는다는 생각”(the idea of conquering and surviving nature)(Alexander에서 재인용)을 표현한다고 언급한다. 이처럼 278 정진만 화에서 글래스는 자연 속의 거 하고 끔찍한 힘을 상징하는 곰과 싸워 그 상을 극복한 자이기 때문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역학 적 숭고’(the dynamical sublime)를 연상시킨다. 칸트에 따르면, 숭고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발단은 자연적 상이지만 궁극적으로 숭고한 것은 그런 자연적 상을 극복하는 인간의 정신이다(121). 거 한 자연적 상 은 결국 그런 자연이 인간에게 가하는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고 자유를 경험하는 인간 존재의 거 함을 확인시켜주는 매개에 불과하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프로이트적 ‘연물’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환상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남성 주체의 나르시시즘적이고 소위 “숭고한” 남성의 강인함을 체화하기에 󰡔레버넌트󰡕의 글래스는 화에서 웅으로 그려지는 것이고, 어빙과 엘스워스의 여행서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이 화 이전에 서부의 탐험사에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서 우리는 글래스의 웅담에 한 여러 서사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자연(적 상)에 굴복당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정복하는 이 사냥꾼의 숭고한 ‘남성적 강인함’(masculine robustness), ‘자력의존’의 덕목임에 주목해야 한다. 이 서사들은 그것이 책이든 화의 형태든 독자 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웅을 동일시할만한 상으로 만든다. 여기에서 자력의존, 남성적 강인함에 한 찬미를 하는 문화적 형성물 들은 이런 미덕들이 국가정체성에까지 연결되어 미국이 곧 자력의존과 남성적 강인함을 가진 나라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글래스의 자력의존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가 작은 물고기와 개구리를 먹으며 스 스로에 의지해 견뎌냈다”(A Tour 159)는 어빙의 서술에서 잘 드러난다. 어빙과 동시 인 19세기 전반기에는 자력의존에 한 강조가 크게 이루 어졌고, 이것의 표적인 예가 바로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다. 에머슨은 「자력의존」(“Self-Reliance”)에서 미국이 정치적 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유럽으로부터 독립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에머슨이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힘”(power which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79 resides in him)(95)을 개발하라고 촉구하거나 “자기 자신을 신뢰하 라”(Trust thyself)(95)고 동시 인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유럽이라는 구세 계와 미국을 차별화하면서 정치-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독립하려는 미 국의 시 정신을 잘 반 해주고 또 강화한다. 또한 어빙의 동시 통령 인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은 당시 미국 중들의 지지를 받으며 잭슨 민주주의 시 를 이끌었는데, 존 윌리엄 워드(John William Ward) 는 󰡔앤드류 잭슨: 시 의 상징󰡕(Andrew Jackson: Symbol for an Age)에 서 동시 인들이 잭슨 안에서 자신들의 이미지와 정신을 찾았다고 언급 한다(1). 이처럼 잭슨이 국민적 웅으로 추앙받은 데에는 그가 노동자계 층의 참정권을 확 시킨 수수한 서민출신의 통령이라는 점 이외에 변 경지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 경계의 미개척지)의 비천한 출신으로 제 로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통령의 위치까지 오른 ‘자 수성가인’(self-made man)의 모델이 된 점, 독립전쟁의 시기에 포로로 잡 혔을 때 굴종적이지 않고 국군 장교의 부츠를 닦기를 거부해 머리와 손에 칼로 베이는 상처를 입은 점(Ward 183), 1차 세미놀 전쟁(the first Seminole War)(1817-1818)에서 인디언 파이터로서 크게 활약했던 점, 그리고 서부개척사에서 가장 거칠고 강력하게 인디언 이주정책을 추진해 당시 미국 백인들의 관점에서 ‘남성적 강인함’을 구현한 측면이 크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에머슨과 잭슨이 강조하고 구현했던 덕목인 자력의 존과 남성적 강인함은 당시 마운틴 맨 계층이 잘 구현해 주었으며, 킴멜 의 표현을 빌면 마운틴 맨은 미국적 남성다움의 상징으로서의 ‘ 웅적 장 인’(the heroic artisan) 부류에 속한다. 그에 따르면, 이 웅적 장인은 “독립적이고”(independent), “고된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unafraid of hard work), “자력의존”(self-reliance)의 미덕을 가진다(16). 그런데, 여기에서 ‘독립적임’, ‘자력의존’ 같은 가치들은 국가주의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이 유럽, 특히 국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고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부모의 나 280 정진만 라인 유럽국가들과 차별화 하려했던 정치적, 문화적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을 ‘독립적임’, ‘자력의존’과 연관짓는 것은 반드시 유럽, 혹은 국의 군주제와 미국의 민주주의를 차별화하려는 역사적 문맥에서 이해되 어야 한다. 미국은 국가를 형성한 시기부터 자신의 나라가 유럽, 국의 군주제, 귀족제와 다름을 강조하고, 지나치게 세련되고 여성화된 듯한 유 럽(혹은 국)의 문명과 다른 남성적 특성을 미국의 국가적 특징으로 부 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어빙이 17년간 유럽에서 거주하다 1832년에 귀국해 당시 미개척지 던 오클라호마 지역을 여행했을 때, 그는 자신의 모험 길을 동행하며 보 호해주는 미국 삼림경비원들(rangers)을 보며 서부에 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그들[삼림경비원들]은 부분 처음 탐험 길에 오르고 아주 건강하고 활력적이며 기 에 부풀은 젊은이들이었다. 나는 젊은 피가 흐르게 하는 곳으로서 이처럼 사냥감이 풍부하고 모험거리로 가득한 거친 숲의 생활 과 웅장한 산악지방보다 더 적절한 곳을 떠올릴 수 없다. 우리는 호사스 럽고 여자처럼 나약하게 키우려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유럽으로 보낸다. 내가 보기에, 초원으로의 이전의 여행이 우리의 정치제도와 가장 부합 하는 것으로서 사내다움, 단순 소박함, 자력의존을 훨씬 더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A Tour 55, 강조는 필자의 것) They were mostly young men, on their first expedition, in high health and vigor, and buoyant with anticipations; and I can conceive nothing more likely to set the youthful blood into a flow, than a wild wood life of the kind, and the range of a magnificent wilderness, abounding with game, and fruitful of adventure. We send our youth abroad to grow luxurious and effeminate in Europe; it appears to me, that a previous tour on the prairies would be more likely to produce manliness, simplicity, and self-dependence, most in unison with our political institutions.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81 여기에서 “우리의 정치제도”는 당시의 시 정신으로서 앤드류 잭슨적 인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일컬으며, 어빙은 이 미국적 민주주의를 유럽의 호사스럽고 여성화시키는 귀족중심주의와 조시키면서 미국의 남성다움, 자력의존과 연결짓는다. 어빙의 시선에서 이런 덕목이 가장 적절하게 꽃 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미국의 자연으로서의 거친 서부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강인한 남성성의 국가정체성을 구축하는데 당시 에 숲에 사는 남자(Backwoodsman), 사냥꾼, 마운틴 맨은 적절한 모델이 되어 남성다움, 강인함을 상징하게 된다. 예컨 글래스가 곰과 싸워 생 존한 무용담을 엘스워스에게 전해준 인물인 빈 위는 1832년에 어빙이 오클라호마 지역을 여행할 때 경호를 하던 삼림경비원들의 상관이었는데, 어빙은 그를 “숲에 사는 남자”(Woodsman), “최고의 사냥꾼”(a first-rate hunter)으로 묘사한다(A Tour 48). 어빙에 따르면, 그는 약 40세가량의 남자로서 “활력이 넘치고 활동적이다”(vigorous and active)(A Tour 48). 어빙, 그리고 빈 위와 함께 모험을 했던 “베테랑 사냥꾼”(a veteran huntsman)인 라이언(Ryan)은 비록 늙었지만 “억세고”(tough) “젊은 기 개”(youthful spirit)을 지닌 강인한 남자로 묘사된다(A Tour 48-49). 어 빙의 재현에서 알 수 있듯이, 마운틴 맨들은 ‘남성의 강인함’(masculine robustness)을 표하는 계층으로 전형화되며 찬미된다. 마운틴 맨들이 미 국의 정체성과 연결되는 사회-문화적 인식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실제 마운틴 맨들도 자신들을 미국적인 것과 동일시했다. 마운틴 맨들이 서부 에서 국, 스페인 국적의 사냥꾼들과 조우하게 되어 마찰이 빚어지게 되 면서, 마운틴 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국가나 정부의 이익과 동일시하게 된다(Goetzmann 108). 즉 마운틴 맨들은 국적이 다른 사냥꾼들과의 경 쟁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상황을 미국이란 국가의 운명과 동일시했던 것 이다. 유럽(혹은 국)의 지나친 문명화에 따른 남성의 여성화에 한 반 급부로서, 즉 부정적인 방식으로 미국의 강인한 남성적 ‘독립성’, ‘자력 의존’을 강조하고자 미국의 시도가 다방면에서 진행되었고, 이런 국가주 282 정진만 의적인 태도가 미국의 마운틴 맨들에 한 당시의 재현뿐만 아니라 현 에도 그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며, 그 한 예가 바로 이 글의 논의 상인 󰡔레버넌트󰡕이다.4) 유럽을 여성화시키고 미국을 그것의 부정으로서 남성화하면서 국가정 체성을 구축하는 일련의 국가주의적, 사회-문화적 시도의 기저에는 여성 화되는 것에 한 미국 백인남성의 심리적 불안과 공포가 존재한다. 문명 화된 현 사회에서 심리적으로 미국의 백인남성들은 여성화되는 것에 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고 남성성을 확인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이 화는 남성적 강인함을 명징하게 구현하는 마운틴 맨 글래스를 주인공 으로 내세워 이런 관객의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이 화는 각종 슈퍼맨을 화주인공으로 삼아 남성적 강인함에 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일련의 화들의 또 다른 반복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마운틴 맨 계층이 1820년 부터 1840년 까지 두하다 소멸했는데 19세기 후반기 서부의 카우보이들은 이 마운틴 맨 계층의 후예들이다. 현 의 보이 스카우트의 4) 이 화의 국가주의적 색채는 프랑스 국적의 군인들과 모피회사 소속 사냥꾼들의 도덕적 비열함을 부각시키는 데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들은 아리 카라족 추장의 딸 포와카(Powaqa)를 유괴하여 강간하고, 한 원주민을 붙잡아 죽여 그의 목에 ‘야만인’이란 팻말을 걸어 놓는다. 이런 부정적인 묘사는 상 적으로 미 국 마운틴 맨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시사한다. 화에 따르면, 물론 미국의 마운 틴 맨 가운데 피츠제럴드같은 비열한 인물도 있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예컨 브리 저처럼 동료 마운틴 맨의 역경에 공감하고 도와주려는 인정 많은 인물도 있다. 화평 「레버넌트」(“The Revenant”)에서 앤소니 레인은 브리저가 피츠제럴드보다 도 덕적으로 “더 전도유망한 인물”(a more promising character)이라고 평가한다. 그런 데 주목할 만한 것은 엘스워스의 서술에 따르면, 피츠제럴드와 브리저가 글래스와 함께 남겠다고 한 이유는 200달러의 보상금 때문이다. 엘스워스는 “탐욕이 강력한 동기이다”(Avarice is a strong motive)(54)라고 지적한다. 후에 글래스가 기적적으 로 생환하자 그를 “무정하게 다룬 악당들”(the reckless villians [sic])(57)은 달아나 버린다. 그러나 화에서 브리저는 글래스를 보살펴주려 했고, 그를 버리고 떠날 때 죄책감을 느끼며 보상금을 받길 거부하는 양심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화 속에는 리더십과 준법정신을 갖춘 “인정 많은 모피사냥꾼 지휘자”(goodhearted fur-trapper leader)(Truitt) 앤드류 헨리 소령도 있다. 프랑스인과 미국인의 차이나는 재현은 이 화가 분명 국가주의의 색채를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83 전신은 사실 서부의 카우보이라기보다 그 이전의 마운틴 맨이다. 또한 현 의 수많은 화와 소설들, 그리고 각종 게임에 등장하는 거친 남성 웅들— 화의 몇 가지 예만 보더라도 근육질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 (Sylvester Stallone) 주연의 󰡔록키󰡕, 󰡔람보󰡕 시리즈, 아놀드 슈워제네거 (Arnold Schwarzenegger) 주연의 많은 화들, 󰡔슈퍼맨󰡕과 󰡔배트맨󰡕 시 리즈, 그리고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어벤져스󰡕 시리즈 등에 등장하는 슈 퍼 웅들—의 문화적 원형은 바로 19세기 전반기의 글래스 같은 ‘마운틴 맨’인 것이다. 미국의 국가정체성을 남성적 강인함으로 채색하는 예술적 작업의 문제 와 관련하여, 우리는 현실 속에 존재했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글래스의 혼혈아들을 화가 창조해내고 그를 미숙한 어린 아이나 나약한 여성처 럼 부정적으로 그리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 속에 호크가 누워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장면이 있다. 󰡔레버넌트󰡕의 초반부에 아리카라족 의 공격을 받자 마운틴 맨들은 비버 가죽을 도중에 숨겨두고 수로가 아 닌 육로로 돌아가야 할 형국에 처해있다. 이때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애써 모았던 비버 가죽을 가지고 가지 못하는 분풀이를 원주민과 결혼해 친화 관계에 있는 글래스와 그의 아들 호크에게 해댄다. 그는 글래스의 아내인 포니족 원주민과 그녀의 혼혈아를 비아냥 며 “야만인은 야만인일 뿐이 다”(savage is savage)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호크를 “잡종 놈”(half-breed)이라고 부르며 비하한다. 이에 호크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 하고 분노를 표출하려 하지만, 글래스는 그런 아들에게 백인들은 혼혈아 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 피부색만 본다고 냉철히 말하며 그저 없는 존재처럼 행동하라고 혼을 낸 다. 그날 밤, 자신을 야만인으로 취급하는 피츠제럴드에 한 분노, 그리 고 그에 한 응을 하지 못하게 막았던 아버지에 한 서운함, 그리고 백인 중심의 세상에서 무시당하며 그림자처럼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 에 한 서러움 등이 겹쳐 호크는 흐느껴 운다. 그렇게 우는 아들에게 글 284 정진만 래스는 “너는 내 아들이다”(You are my son)라고 말하며 달래고 다독여 준다. 이 장면은 물론 따듯한 부정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는 백인 남성의 강한 인내심과 원주민의 피가 섞인 혼혈인의 소위 여성 적인 나약함의 차이를 표현하기도 한다. 바꿔 말해서, 이 장면은 다음과 같은 위계적 립구조, 즉 백인/혼혈(혹은 원주민), 성숙한 남성/미숙한 아 이, 강한 남성성/나약한 여성성, 이성/감성(혹은 감정), 절제/통제 안됨 등 을 내비친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혼혈인 호크를 여성화에 한 백인 남 성의 불안과 공포가 타 상에게 심리적으로 투사되어 형성된 재현 상이 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혼혈인 호크는 킴멜의 표현을 빌면 “백인의 남성다 움이 투사되고 작동되고 정의되는 스크린”(screens against which white manhood is projected, played out, and defined)으로 창조된 상이다 (66). 남성이 나약하게 되고 여성화된다는 것에 한 불안을 혼혈인을 여성 화시키는 투사 작용으로 해결하려는 근간에는 미국 백인들의 인종주의와 복합적으로 연루된 젠더 정치학이 존재한다. 윌리엄 스탠튼(William Stanton)에 따르면 19세기 미국의 저명한 인종학자 던 조사이어 C. 노 트(Josiah C. Nott)는 뮬라토와 같은 혼혈인들이 백인에 비해 지적으로 열등했을 뿐만 아니라 “덜 강건하다”(less hardy)고 여겼다(67). 바꿔 말 해서, 당시의 의사-과학(pseudo-science)은 혼혈인이 백인의 남성다움을 지니지 못한, 여성화된 존재라고 주장했으며, 이것은 당시에 진리처럼 받 아들여졌다. 문제는 혼혈인에 한 당시 미국 백인들의 심리적인 태도가 현재에도 󰡔레버넌트󰡕 같은 화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 국 󰡔레버넌트󰡕는 유색인이나 혼혈인을 미국 백인남성의 강인함을 확인시 키는 상으로 활용(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오용’)하는 젠더 정치학에 연 루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85 4. 결론 󰡔레버넌트󰡕는 드물게 서부로 팽창하기 시작하던 미국의 초기 개척시 의 마운틴 맨을 주인공으로 삼아 극서부지방의 장관을 묘사하고 그런 숭 고한 자연에 못지않게 숭고한 한 백인 남성의 인내와 불굴의 의지를 그 린 현 화이다. 이 화는 어찌 보면 포니족 여성과 백인 남성, 그리 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와 백인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과 상실을 그려낸다. 그리고 더불어 이 화는 서구유럽인들이 북미 륙에 진출하면 서 원주민들에게 자행한 죄악을 언급하고 재현해냄으로써 지난 역사의 식민주의적 과오를 심문하고 관객에게 아픈 과거에 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화는 죽은 아내에 한 간절한 그리움, 그 리고 죽은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복수의 모티프를 통해 백인/원주민의 관 계를 낭만적으로 채색하는 가운데, 원주민과 혼혈인을 퇴보한 상으로 바라보던 당시 미국 백인들의 인종주의를 드러내고, 서부로의 토팽창에 지 한 기여를 했고 인디언 파이터로 활약하며 금전적 이득만을 세속적 으로 추구하던 마운틴 맨들의 실체를 상당 부분 은폐하거나 뒤틀린 방식 으로 재현한다. 인종적 차원에서 이 화는 미국 백인과 원주민간의 건널 수 없는 깊은 심연을 미학적으로 그려놓을 뿐만 아니라, 원주민은 ‘사라 져가는 사람들’이라는 오래된 관념을 다시 한 번 재확인시킨다. 이 화 는 젠더의 차원에서는 마운틴 맨 글래스의 숭고한 남성적 강인함을 극 화시켜 ‘자력의존’의 덕목을 찬미하고 그것을 국가주의적인 차원으로까지 확 시킨다. 󰡔레버넌트󰡕에서 혼혈인을 미국 백인의 남성다움이 투사되는 일종의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점을 고려하면, 젠더적 차원에서 미국 백인 남성성을 긍정하는 것이 인종주의, 국가주의와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복 잡하게 뒤얽혀 시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 어나 초인적 인내를 보여주며 오디세우스처럼 귀환하는 한 마운틴 맨의 웅적 서사 󰡔레버넌트󰡕는 다른 한 편으로 인종과 젠더 정치학의 오래된 286 정진만 이데올로기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채 미국 백인남성 우월주의라는 유령 혹은 망령을 또한 우리에게 데려오는 화라 할 수 있다. 의식적이 든 무의식적이든 남성우월주의에 기초해 남성적 강인함에 집착하는 것 이 국가적,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한, 인종주의, 남성중심주의, 국가주의가 복합적으로 상호 공모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강화시키는 이 런 부류의 화는 죽음의 세계에서 유령처럼 계속 우리에게 돌아올지 모른다. 19세기 마운틴 맨 유령의 현대적 귀환 287 Works Cited 정지혜. 「운명을 거슬러 살아남아라」. 󰡔씨네21󰡕. 18 Ja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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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worse, the film silently instills the long-lasted racist (mis)belief about Native Americans (plus mixed-bloods) as the ‘Vanishing People’ by making an unbridgeable distance between Glass and his Pawnee wife (and his mixed-blood son). This essay would allow us to see the film’s strategy forging white Americans’ masculine robustness within the levels of gender, race, and nation, where other racial and national groups are characterized as effeminate and immoral in a complex way. Key Words The Revenant, Hugh Glass, mountain man, Vanishing People, masculinity, national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