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73DC1A4B0E6C3B6322E687770> DOI : 10.5392/JKCA.2011.11.2.259 20세기 현대미술에서 표현주의와 신표현주의 연관성 A Correlation between Expressionism and Neo Expressionism in 20th Century Modern Painting 전민경 * , 정경철 ** 미술심리치료연구소 * , 한남 학교 ** Min-Kyung Jun(junmky@hanmail.net) * , Kyung-Chul Jeong(jkc1199@hnu.kr) ** 요약 독일은 19세기 후반기에 통일을 이루었지만 격한 도시화와 물질주의 속에서 많은 혼란을 겪으며, 정 신 인 명을 통해 독일 인 문화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지식인층을 심으로 퍼져나갔다. 실 속에 서 발생하는 분노, 슬픔, 억압 등의 심리 상태를 본능 인 감성에 충실하며, 그 로 표 하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형태가 왜곡되거나 과장되며, 강렬하고 어둡고 내성 인 분 기의 낭만주의 통을 잇게 되 었다. 시즘의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 로 낙인 히며 막을 내렸던 표 주의 미술이 20세기 말에 다시 독일을 심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비록 신표 주의자들이 다양한 오 제와 매체를 극 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인간 내면세계를 표출하고자 과거 표 주의자들이 즐겨 썼던 인물, 신화, 상징을 거친 붓 터치와 풍부한 색채 등으로 다시 화면에 등장시키며 독일의 문화와 사회에 한 희망을 은유 으로 표 하고 있다. 따라서 신표 주의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표 주의에 해 살펴보 며 이들이 독일 통 낭만주의와 어떠한 맥락에서 일치하며 미디어콘텐츠로 계승 발 되었는지를 논하고자 하 다. ■ 중심어 :∣표현주의∣신표현주의∣파시즘∣ Abstract Although having only become a unified nation in latter 19th century, Germany saw a movement centered on intellectuals to find culture via mental revolution after experiencing much confusion amidst rapid urbanization and materialism. Having expressed as they are such psychological states as anger, sorrow, repression, etc., which arise in reality, by remaining faithful to instinctive sensibility, the form naturally becomes distorted or exaggerated and continues on the tradition of romanticism of a powerful, dark, and introverted atmosphere. Having been discontinued after being branded as 'decadent art' by the Nazis of Fascism, expressionist art has returned in latter 20th century mainly centered on Germany, and this merits our attention. While neo expressionists actively use various objets and media, they metaphorically express hope about Germany's culture and society by again placing on the screen figures, myths, and symbols using rough brush touch, rich colors, etc., which past expressionists enjoyed using to represent the inner world of humans. As such, by examining expressionism, which can be seen as the origin of neo expressionism, we will discover the context in which these people conform to Germany's traditional romanticism and how they inherited and developed it. ■ keyword :∣Expressionism∣Neo Expressionism∣Fascism∣ * 이 논문은 2010년도 한남 학교 교비학술연구조성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습니다. 수번호 : #110104-004 수일자 : 2011년 01월 04일 심사완료일 : 2011년 01월 31일 교신 자 : 정경철, e-mail : jkc1199@hnu.kr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1 Vol. 11 No. 2260 1. 서론 독일은 패 국으로서 망과 허무에 빠져 있었고, 20 세기 후반에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분단국으로 이념 립의 심에서 있었으며, 20세기말에는 사회주 의 국가의 붕괴를 상징하는 통일을 일궈낸 격변의 장 이었다. 이러한 독일의 변화 속에서 최근 유럽미술에 한 심이 증가되면서 독일 미술에 한 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러한 때 본 연구는 거칠고 화 려한 색채와 과장된 형태의 왜곡으로 특징지어지는 표 주의와 강한 감정을 유발시키는 내용과 역사 인 언 , 날카롭게 각이 지고 왜곡된 형태의 신표 주의 발 생지가 독일이라는 것에 주목하 다. 이 두 미술사조의 연 성을 고찰하여 미디어콘텐츠 발 방향을 모 색하려 한다. 본 연구에서는 제1차 세계 후의 표 주의 미술 과 1980년 신표 주의 미술이 다 같이 독일에서 선두 으로 발생되어 독일미술 고유의 통성을 잇고 있고 쉰베르크와 그린버그의 이론인 미술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만큼 다원성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설정해 놓 고 본 연구를 시작한다. 2.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배경과 전개 20세기 반기에 생겨난 모든 미술 사조들 가장 악하기 힘들고 정의하기 어려운 가 표 주의이다. 이것은 매우 주 이고 아카데미의 규범을 거부하는 모든 술 활동 - 미술, 음악, 문학, 화 등 - 을 포함 하기 때문이다. 표 주의라는 말은 처음에는 랑스 인 상주의(Impressionism)의 합리주의 인 사고에 반 하 는 성향을 지칭하기 하여 사용되었다. 그 후 독일 인 형식감정을 지배하는 상 개념으로 리 인식되었다. 미술에 아방가르드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 이후 유럽 미술의 새로운 사조들은 부분 그 이 에 존재했던 사 조에 한 반발 혹은 반작용으로 창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표 주의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데, 양 식 으로 인상주의와 세기말 상징주의에 반발하면서도 독일 표 주의 작가들은 몇몇 인상주의자의 향을 받 아 나름 로 독자 인 변형을 꾀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듯 이 의 사조에 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만의 독일 인 성격이 강한 작품을 창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특히 본 연구에서는 은 표 주의 세 들이 빌헬름2세 (Wilhelm Ⅱ)의 집권 말기에 처해 있던 시 상황에 주 목한다.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 국가주의와 자유주의 사상 이 팽배해지면서 러시아를 심으로 독일을 통일시 키고 빌헬름 1세(WilhelmⅠ)가 독일제국의 황제가 되 었다. 그 후 빌헬름 1세와 2세가 이끄는 독일은 강 국 들을 견제하며 비스마르크를 앞세워 군비확장에 힘쓰 고, 강철과 석탄을 생산하여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유럽 의 신흥강국으로 등장하 다. 그러나 통일은 독일 국민 들의 기 치에 미치지 못했고, 빌헬름 정부는 민주주의 정치의식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마 주지 않았다. 이 게 사회 반 으로 많은 갈등요소와 불안정한 분 기가 퍼져 있을 때 일부 지식인들과 술인들 사이에 서는 이러한 도시화와 물질주의가 비독일 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도시화와 물질주의로 인하여 독일 특유의 정신 이고 신비 인 통이 괴되어 가고 있다고 생 각했으며, 독일인의 삶의 본질은 정신 인 명을 통해 되찾아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1]. 은 술가들의 지 방황은 새로운 독일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공감 를 형 성해 나가는 한편 서구 문명에 정면으로 도 한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서들이 읽히게 되 는 계기를 마련하 다. 독일 표 주의는 로이드의 심 리학 분석과 실주의의 계만큼이나 니체의 철 학 사상과 깊은 계를 맺고 있다. 니체는 독일의 부르주아 문화를 오했는데 그의 사 상은 오늘날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인들 사이에 서 상충된 두 가지 견해로 나 어진다. 비 인 입장 에서의 니체는 서구 물질문명의 타락과 붕괴를 박하 게 진단한 염세주의 철학자로 평가되는가 하면, 낙 론 인 입장에서의 그는 허무주의 철학의 구 으로 서 몰락의 서구 문명을 새롭게 재생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 인 철학자로 평가받는다[2]. 이처럼 양면 20세기 현대미술에서 표현주의와 신표현주의 연관성 261 인 결과의 해석을 보이는 니체의 사상은 번민하는 독 일 술가들에게 자신에 충실하고 용기를 가져야 하며 술가의 자유와 상상력의 자유로움에 제한이 없다는 믿음을 부여했다. 한 독일 문화를 소생시킬 수 있는 정신 인 명은 자신들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명가로서의 역할을 자처하게 만 들었다. 20세기에 가까워오면서 독일에서는 많은 미술이론들 이 활발하게 발표되기 시작하 고, 미술사학자들은 세나 기 기독교 시 의 미술을 주목하게 되는데 이러 한 경향은 이후 표 주의 회화의 태동과 한 련을 갖게 된다. 특히 보링거(Wilhelm Worringer)는 콘트라 피들러와 데오도르 립스(Theodor Lipps)의 이론의 향을 받아 1908년에 <추상과 감정이입> (Abstraktion und Einfϋhlung)이라는 논문을 발표하 는데, 이것은 독일 표 주의에 이론 근거를 마련하 다. 여기서 W. 보링거는 술창조의 두 근원 인 축으로서 ‘추상’ 과 ‘감정이입’ 을 상정하고, 이 두 욕구의 양성 형식에 의 해 표 주의가 유래한다고 보았다. 그의 형식론은 한마 디로 두개의 상반되는 형식 즉 사물을 기하학 인 형태 로 재창조하려는 욕구로서의 추상과 사물을 가능한 한 자연 그 로 그리고자 하는 욕구인 감정이입간의 형식 유형론이라 할 수 있다[3]. 20세기 독일 표 주의 화가들의 열망은 19세기 독 일 낭만주의에 정신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과 자연 과의 교감과 친화력을 표 하고자 했으며, 풍경화를 통 해 인간 존재에 한 심리 통찰, 자연과 인간의 정신, 자유에 한 개인 이면서도 시 정신에 부응하는 해 석을 창조하려 했다. 특히 카스 르 다비드 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는 활한 자연을 면한 인간의 낭만 정서를 신비 이고 종교 인 에서 감성 인 풍경화를 그렸던 이 시기 독일의 가장 요한 화가이다. 그는 인간과 자연의 계, 유한한 것 과 무한한 것의 계에 한 내 통찰을 보여주려 했 는데, 이러한 낭만주의의 개념은 표 주의 화가들에게 연결되었다. 다리 와 청기사 들이 즐겨 그렸던 풍경 화라는 소재 자체에서도 이는 입증된다[그림 1].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탄생한 독일 표 주의는 비참 한 실을 굳이 은폐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솔직하고 나라하게 드러내고자했다. 즉 인간 내부에 있는 알 수 없는 의식 세계를 솔직하게 표 하기 해 통 인 미 의 개념을 무시하고, 회화의 선이나 형태, 색채, 형태의 왜곡 등을 자신들의 감정수단으로 이용하 다. 그들은 인간의 비참한 실들을 직시하고 인간의 고통, 가난, 폭력 등을 민하게 통찰하면서 이를 강렬한 색채와 왜 곡된 선으로 생동감 있게 표 하 다[4]. 그림 1. 1810. 프리드리히, 떡갈나무 숲 속의 수도원 이로 인해 표 주의 작품을 처음 하는 사람들을 당 황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는 아마도 통 인 아름다움과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표 주 의자들은 인간의 고통, 가난, 격정에 해 민하게 느 기 때문에 미술에서 조화나 이상 인 아름다움을 고 집할 필요가 없었다. 한마디로 표 주의 화가들은 인간 내면의 서정 인 아름다움보다는 분노, 비장한 슬픔, 폭 력, 억압 같은 강렬하고 과격한 감정을 과감하게 그림 을 통해 표 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 2.1 다리파 (Die Brϋcke) 표 주의가 제1차 세계 을 후해 독일이 처한 시 상황과 한 계를 맺고 있음을 앞에서도 살펴 보았다. 당시 속도로 진행되었던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기 감과 불안감, 인간성 괴, 쟁에 한 공포 등이 술가들로 하여 비 시각을 증 시키는 결 과를 가져왔다. 1905년 6월7일 드 스덴에서 E. 키르히 , 에리히 헤 (Erich Heckel, 1883 ~ 1970) 칼 슈미트 로틀루 (Karl Schmidt Rottluff, 1884 ~ 1976) 리츠 블라일 (Fritz Bleyl, 1881 ~ 1966)등의 건축학도등이 주축이 되어 미술가 공동체가 제 기능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할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1 Vol. 11 No. 2262 것을 약속하며 ‘다리 ’ 그룹을 형성하 다. 20세기의 새로운 형상회화인 표 주의가 유럽화단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E. 키르히 의 주도 역할로 모인 그들은 S. 로틀루 에 의해 인간은 내면세계와 외부를 연결하 고 이상과 실을 그리고 보수 인 사회로부터 습 인 요구와 진보 이고 합리 인 미래를 잇는다는 의미 에서 ‘다리’ 라고 명명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해진다 [5].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재와 미래를 잇는 다리 구실을 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산층의 안이한 도덕의 식과 물질문명에 반발하면서, 새로운 인간 시 를 지향 하는 미술을 추구하려했다. 19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유럽에 많은 민속박물 이 생겨나면서 유럽 강국의 식민지나 타 문화권에서 유입 되어 온 공 품들이 들에게 소개되었다. 이 공 품 들은 유럽인들에게 지극히 원시 인 것으로 보여 졌으 나, 술가들에게는 새로운 표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 기가 되었다. 다리 화가들 한 낯설고 강렬한 술 로부터 감을 받게 되는데, 이들은 낯선 공 품 속에 서 느껴지는 내재된 힘과 원색 인 색채에 끌렸던 듯하 다. 더구나 일본 채색 목 화와의 만남은 일본 화가 지니는 강렬한 색채와 단순화된 형태 그리고 평면 화 면 등의 조형 인 특징들로 인해 다리 화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무렵 E. 키르히 에 의해 알 히 트 뒤러(Albrecht Dϋrer, 1471~1528 )의 완벽한 목 화 기술을 발휘해 만든 세련된 화 작품이 소개되고 사람 들에게 극찬을 받게 되면서, 역사 으로 잊 졌던 고 독일 미술에 해서도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는 계기 가 만들어졌다. 새롭고 인 주제를 찾던 다리 화가들은 1906 년부터 드 스덴의 노동자 집지역과 모리츠부르크 호숫가 등을 오가며 공동생활을 하며 공동작업과 공동 시를 하 다. 이들은 도시에서는 산업의 팽창과 도시 의 번화가 유흥지에 을 맞추었고, 시골 풍경에서는 야외생활과 드 목욕의 요성에 한 당시의 논의를 참조했다[6]. 다리 의 창립멤버이자 가장 핵심인물인 E. 키르히 는(1880 ~ 1938) 다리 를 결성할 당시 아직 자신만 의 독자 인 양식을 형성하지 못하고 후기인상주의와 반 고흐의 향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2년후의 작품 <거리>를 보면 평면 이고 주 인 색채가 사용되며 자신만의 새로운 스타일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E. 키르 히 는 움직임이 풍부한 주제들 즉 카바 나 서커스, 밤새 업하는 술집 등을 선호했으며 그쪽에서 재능 을 발휘했다. <일본우산 아래의 여인>은 통 인 드와는 다른 야만 이며 불건 한 분 기가 느껴지는데, 이것은 지 나치게 인간의 형체를 과장되고 왜곡 시킨 채, 평면 인 강렬한 원색들을 조화시키기보다는 충돌시켜서 긴 장감을 주기 때문이다. 드에서 보여지는 표정과 자세 에서 우리는 원 인 유혹을 감지하게 되는데 원 인 찬미는 산층 도덕 념에 한 다리 화가들의 반 기 으며 그들 미술의 요한 주제의 하나 다. 페미니 스트 미술사학자 캐롤 던컨(Carol Duncan)은 이러한 여성 드에서 보여지는 남성지배 사고는 성에서의 계 의식을 반 하는 것으로 이들 화가들은 진보 사 회 개 을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 는 술가들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지 하면서 여성을 성 상으로 나타내어 자신들의 사내다움을 극 으로 표 하려는 사고는 비단 다리 뿐만 아니라 야수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고 하 다[7]. 이러하 듯이 폐허 속에서 새 시 가 시작되리라는 믿음보다는 오히려 갖가지 참상을 피부로 겪으면서 유럽 문명의 자 기 멸 징후와 모순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더욱 더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질, 단순하면 서도 들쭉날쭉하게 왜곡된 형태의 인체들로 구성되어 진 표 주의의 형이라고 할 만한 작품들을 구사하게 된다. 다리 는 1906년 드 스덴에서 열린 첫 그룹 시회 를 한 이후 1911년 좀 더 국제 인 흐름에 민감한 베를 린으로 활동무 를 옮기게 되는데, 그곳에서 괴와 상 실의 조를 목격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오히려 그룹 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드 스덴에서의 공동 활동을 통 해 이룩한 강한 조형 결속력의 해체를 불러왔다. 략 1907년경부터 다리 화가들은 표 주의 인 조형언어에 다다르게 되는데 강렬한 색채 비, 동요되 는 듯한 왜곡된 형태, 열띤 분 기, 담한 평면구도, 압 20세기 현대미술에서 표현주의와 신표현주의 연관성 263 축된 공간 등의 특성을 보 다. 이러한 특징들은 기존 의 통 미의식에 한 표 주의자들의 도 의지와 내면 인 불안을 표 하려는 강한의지를 의미하는 것 으로 보인다. 한 이런 담한 표 형식들은 미술 역 사상 가장 자유롭고 참다운 표 이었으며, 어 보면 오늘날의 극단 인 술표 도 가능하게 해 원동력 이 아닌가 생각된다. 2.2 청기사파 (Der Blaue Reiter) 다리 보다 조 늦은 1911년경 남부 독일에서는 W. 칸딘스키와 F. 마르코 등이 심이 되어 좀 더 감성 이고 범자연 인 표 주의 미술인 <청기사 >가 형성 되었다. W. 칸딘스키가 좋아하던 기사의 모티 와 F. 마르크가 좋아했던 말, 그리고 두 사람이 공통 으로 좋아했던 청색을 합쳐서 미술연감의 형식으로 발행하 던 출 물을 <청기사> 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것이 곧 그룹을 의미하는 명칭이 되었다. “청기사” 라는 명칭은 우선 ‘기사’ 의 모티 는 돌격하는 세 기사와 기독교 사(戰士), 성인(聖人)의 남성 인 미덕에서부터 독일 낭만주의의 유산까지 아우르고 있으며, ‘청색’ 한 미 술가들에게 정신 인 의미를 함축하는 색이기 때문이 다. 청기사 는 다리 와는 달리 특정한 양식을 형성하 지도 않았고 공동체 결속력도 약했지만 일종의 아방 가르드 유 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아카데믹하게 경직 된 미술을 무 뜨리기 해 범하고도 국제 으로 구 성되었으며, 여자들에게도 문을 열었고, 신 인 미학 가치를 탐구하기 한 수단으로 풍경화, 정물화, 실 내 정경화 등을 받아들 다. 그 특히 풍경화를 시 했는데 이는 청기사 한 다리 와 같이 독일 낭만주 의 통을 잇고 있음을 보여주는 라 할 수 있다. 청기사 화가들 가장 핵심 인 인물인 W. 칸딘 스키(1866 ~ 1944)는 에르미타주 미술 에서 램 란트 (Rembrandt van Rijn, 1606 ~ 1669)의 작품을 보게 되 는데 그 속에서 어둠과 밝음이 어떻게 상호 공명하는지 를 보며 교훈을 얻었고, 모스크바 궁정극장에서 바그 의 로엔그린(Lohengrin)을 감상 한 후 음악 속에 느껴 지는 색의 란함을 느끼게 되었다. 결정 으로 1895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랑스 인상주의 시회에서 모 네(Claud Monet, 1840 ~ 1926)의 “낟갈이” 를 통해 상이나 주제보다 색채로 느껴지는 효과에 한 새로운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창기 W. 칸딘스키는 아르놀드 뵈클린(Arnold Bocklin, 1827~1901) 에게 심을 가졌다. A. 뵈클린은 신화 분 기를 통해 재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꿈을 그린 듯한 막한 풍경들을 통해서 고 의 신화를 부활 시키려 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단순한 신화 그 림이 아닌 정치, 사회 실을 비 하는 상징 인 그 림이었다. 이와 같은 상징성에 W. 칸딘스키는 매료되 었고, 한편으로는 유 트슈틸(Jugendstil)의 향을 받 기 시작했다. 유 트슈틸에서 구제 인 형상을 나타내 기보다는 역동 인 선 자체가 하나의 조형 기능을 가 지고 있다는 인식은 W. 칸딘스키의 작품에 큰 향을 주었다. 1901년 뮌헨의 슈바빙에서 진보 미술그룹 팔랑크 스(Phalanx)를 결성하여 작품 활동을 하 는데, 이 당 시의 작품들은 평면 이며 유 트슈틸의 경향을 강하 게 띠고 있다. 한 고향이나 여행으로부터의 이국 정서를 묘기법으로 표 하기도 했고, 러시아와 독일 의 세 때의 설을 동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섬세한 색채배합으로 표 하기도 했다. 이후 1909년 다시 뮌헨으로 돌아올 때까지 리에 머 물면서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에 이르는 랑스 미술 는 새로운 국제 미술의 흐름을 하게 되었다. 무 르나우 시기 그의 작품은 창조 인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색채와 단순성과 평면성을 특징 으로 하는 일본 채색 목 화의 향이 보여진다. W. 칸 딘스키는 재 형상이 작품과 감상자 사이를 방해하 는 요인이며, 색채가 그림의 내용과 계없이 감정을 충분히 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추상 회화를 주장 하게 되었다. 특히 자연을 모방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이 감상자의 혼을 흔드는 감동을 다는 것에 주목하며 색채로 표 된 음악을 시도했다. Impression(Improvisation) 등의 음악 제목들의 작 품들을 보면 공간이 모호해지면서 색채는 선과 형태에 서 해방되어 독자 이 되면서 내면세계의 무의식을 표 하고 있다. 그는 결과 으로 강렬하고 밝은 색채와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1 Vol. 11 No. 2264 단순화된 형태를 통해 다리 화가들의 작품과는 구분 되는 독일 표 주의의 다른 축을 보여주고 있다. W. 칸딘스키는 < 술에 있어서 정신 인 것에 하 여> 라는 논문에서 미술은 정신에 호소할 수 있어야 하 며, 정신에 향을 미치는 것은 화가의 내면에서 독자 이고 필연 으로 형성되는 색채라고 보았다. 그는 색 채가 심리 효과를 주고 더 나아가 시각뿐 아니라 청 각의 감각까지도 일깨운다고 믿었다. 이를 바탕으로 색 자체가 음악처럼 아름다운 감동을 수 있다고 믿었던 추상미술의 선구자 다. 청기사 화가들은 술의 미래에 한 믿음을 갖고 서정성과 자연을 향한 감정이입에 한 충동을 통해 그 믿음을 표 하 다. 제1차 세계 으로 인해 청기사 는 붕괴되었고, 그 결과 허무주의 다다이즘 (Dadaism)이 래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들 은 독일 미술의 상황을 근본 으로 바꾸어 놓았다. 테 마, 양식, 장르에 한 아카데미즘의 한계를 뛰어넘어 체의 꿈을 목표로 했던 새로운 미술 언어에 한 요 청으로 청기사 는 독일 미술의 창시자 역할을 하 게 되었다[8]. 3. 신표현주의 형성 배경 및 특징 1970년 기 술 활동을 지배했던 미니멀리즘 (Minimailism)과 개념미술(Conceptual Art)등이 지나 치게 지 이며 념 인 경향에 한 반작용으로, 한 모더니즘 미술에서 평가 하 되어왔던 구상성의 부활 을 주장하며 신표 주의가 시작되었다. 신표 주의는 내용의 요성을 강조하며 역사성과 사회성을 되살리 려고 노력했다. 신표 주의가 출 하기 시작한 1970년 부터 1980년 후반까지 격한 문명의 발달은 인간 이 물질에 좌우되고, 스스로가 극단 인 자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건 한 가치와 목 을 형성하지 못하 는 ‘정서 불감증’ 상태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는 앞에 서 살펴 본 표 주의의 발생과도 일치하는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의 신표 주의는 양식 인 면에서 과거의 독일 미술과 북부 유럽의 낭만주의의 통을 이어 받았으며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던 표 주의의 통을 계승했 다고 볼 수 있다. 한 주제 인 면에 있어서 신화나 설 혹은 문학이나 역사 인 사실 등의 서술 인 주제를 빌어서 그것을 작가가 의도하는 그 시 의 정신에 맞게 변형시켜 거의 반구상 이거나 반추상 인 형식으로 표 하기도 한다[2]. 이러한 특징들은 유럽과 미국에 서도 나타나는데, 이탈리아에서는 트랜스 아방가르드 (Trans-Avangarde), 미국에서는 뉴 페인 (New Painting), 랑스에서는 자유구상(Figuration Libre), 독일에서는 통상 으로 신표 주의 (Neo Expressionism)로 칭하며 활동을 했다. 신표 주의는 문명에 한 극도의 비 의식과 붕괴 되어가는 인 간성의 상실로 인한 망과 불안의 의식에서 사회 메 시지를 담으며 돌 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표 주의 작가들은 기존의 신화나 역사를 그들의 시 정신이 담긴 새로운 형태와 내용으로 창출해 내기 도 한다. 신화나 역사를 혼성모방, 화면의 이원화, 패러 디, 첩과 병치, 드로잉의 방법으로 표 하고자 했다. 신표 주의는 모더니즘이라고 일컬어지는 미술사조에 서 거부되었던 회화라는 장르를 그리워하며, 모더니즘 이 퇴폐 이고 모방 이라고 버렸던 인물, 신화, 상징을 다시 화면에 등장시키며 물감과 화폭으로 이젤화를 복 귀시켰다. 이는 재 으로서 미술의 복귀이자 새로운 형 상회화의 부활이었기에 국제 으로 호응이 높았는지도 모른다. 3.1 게오르그 바젤리츠 (Georg Baselitz, 1938~) 독일 신표 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진 G. 바젤리츠는 타시즘(Tachism)과 앵포르 멜 (Informel)경향의 회화, 추상표 주의를 통해 추상미술의 세계를 하게 되었 다. 이 당시 독일의 통 미술은 추상 미술에 비해 시 의 조류에 뒤쳐진 것으로 취 당했고, 무분별하게 추상 미술을 수용함으로써, 문화 선진성을 회복하려는 분 기가 컸다. 역사 소용돌이 속에서 동. 서독을 모두 경험한 G. 바젤리츠는 극도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이 모두를 거부했다. 사회주의 사실주의든 서구의 추상 이든 모두 자신들의 이념을 한 나름의 해결방안 일뿐 20세기 현대미술에서 표현주의와 신표현주의 연관성 265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 체제에서 겪은 상반된 경험과 그로 인한 분노, 갈등들을 바탕으로 G. 바젤리츠는 비록 세계 미술의 흐름에 반할지라도 독일 미술의 회복을 꾀하며 구상성, 역사성, 사회성을 회 복하려는 움직임의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G. 바젤리츠는 1969년 <물구나무 선 숲[그림 2]> 이 란 제목의 풍경화를 통해 역립성( 立性) 회화를 처음 선보 다. 이 무렵 그는 그림의 내용을 색채와 형식만 이 담당하기를 바라며, 방해가 되는 사물성을 털어내려 하고 있었고, 고 웅들의 작업에도 회의를 느끼며 웅들의 이미지를 분할과 해체를 통해 재구성하던 이었다. G. 바젤리츠 는 그림 속에 합리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를 필요로 했으나 이런 이미지로 인해 화법과 색 채에 한 이해가 어려워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이 를 해결하기 해 탄생한 것이 바로 역립성 회화 다. G. 바젤리츠는 추상의 길 신 추상과 구상 사이의 긴장감을 탐구하 고, 독일 표 주의 통에 기 한 회 화 기법으로 독일 사회에 여 히 존재하는 선과 독 선, 왜곡된 역사 을 폭로하며 더 나아가 부조리한 사 회에서 인간들이 겪는 불안과 고독들을 표 하고자 했 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무와 인물이라는 주제 와 힘 있고 넓게 칠해지는 붓질, 강렬한 색채, 단조로운 감정 표출 등은 표 주의 맥을 잇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물구나무 선 숲>은 비록 거꾸로 그려져 있기는 하나 주제 인 면이나 양식 인 면에서 독일 낭만주의 통을 잇는다고 볼 수 있다. 낭만주의 풍경화에 등장하 는 덮인 늙은 고목은 무상함과 불멸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G. 바젤리츠는 덮인 겨울이 지나면 자연의 순환에 따라 이 만물을 소생시키듯 패 과 분단의 아 픔을 겪고 있는 독일이지만 다시 부활을 꿈꾸는 조국을 낭만주의식으로 표 하고자 했던 듯하다. G. 바젤리츠 와 리드리히 모두에게 자연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 니라 삶의 핵심 인 문제들, 즉 정치 인 문제, 삶과 죽 음의 문제 등에 질문을 제기하는 하나의 통로 다. 이처럼 독일 신표 주의의 선구자인 G. 바젤리츠의 작품은 독일의 낭만주의 통과 표 주의 통을 이어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1980년 독일 미술계에 표 주의 물결이 불어 닥쳤을 때 G. 바젤리츠 본인은 표 주의와의 련성을 강력하게 부인하 다. 이는 표 주 의 상과 그 스스로 창조한 ‘거꾸로 형상’과는 본질 으로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G. 바젤리츠가 단지 표 주의와 회화기법상의 유사함 으로 주목받기 보다는 심오한 기 을 통해 평가 받고 싶어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3.2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비평가 로버트 휴가 ‘그의 세 에서 미국, 유럽을 통 틀어 가장 한 화가’ 라고 불 던 A. 키퍼는 독일 내 에서 오랜 세월동안 언 이 기시 되어 온 나치 역사 에 해 피력하는 것을 비롯하여 종교와 철학, 역사와 신화 등 통 인 주제를 부활시켰으며 미술에서 도외 시 되었던 회화의 가치를 새로이 강조하 다. 그림 2. 1969, 게오르그 바젤리츠, <물구나무 선 숲> 그림 3. 안젤름키퍼, <바루스> 1969년 A.키퍼가 < 령>(Besetzungen)을 이용하여 만든 작품[그림 3]에서 그는 자신을 나치에게 경례하는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이는 독일의 과거사는 지워질 수 없으며 시즘 권력의 씨들은 여 히 사람의 혼 속에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음을 암시 이고 반어 인 방법으로 표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A. 키퍼는 역 사는 재성과 지속성을 지닌 것임을 생각하며 끈질기 게 북구의 신화와 민족 사회주의의 결합을 되살려냈 다. A. 키퍼는 수세기 동안 쟁에 의해 토화 되고 폐 허가 된 지와 참담하고 비정한 투쟁이 원히 지속되 고 강화되기라도 하듯 고 인 것의 원형과 진실에 부 합하는 매체들을 사용하여, 짚과 모래 사진 의 그림, 래커, 물 등을 혼합시키고 용하는 자유분방함을 보인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1 Vol. 11 No. 2266 다. 그는 게르만족, 그리스인, 이집트인, 기 기독교인 과 유태인의 신화, 북유럽 민족의 신비주의 정신에서 소재를 빌려와 독일인의 유죄의식과 독일인의 이상주 의를 모호하게 합하여 작품을 제작했다[9]. 따라서 그의 화풍과 분 기는 욕 이며 제와 참회의 느낌이 강 한 M. 그뤼네발트나 A. 알트도르퍼의 그림 같은 비통 한 독일 회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땅이나 모래바닥을 연상시키는 무겁고 우울한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독일 을 상징하는 떡갈나무 숲과 쟁과 죽음을 상징하는 폐 허, 황폐한 숲의 형상을 등장시키고 있다. A. 키퍼는 이 처럼 어두운 독일의 과거를 감추려 하기보다는 과감하 게 직시하고 수용함으로써 그 속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 A. 키퍼는 내 인 감정 을 표 하고 어둡고 내성 인 분 기에서 느껴지는 정 신력에 호소한다는 에서 독일의 낭만주의와 표 주 의의 맥을 잇고 있지만 그들보다 더 개인 이며 념 이고 역사 인 방법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표하는 핵심 인 인물이 되었다. 4. 표현주의와 신표현주의에 대한 미디어콘텐츠 4.1 주제적 특성을 통한 마디어콘텐츠 표 주의와 신표 주의 모두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시하고 감성과 직 에 의지하며 술가의 창조 욕 구에 어떠한 한계도 두지 않았던 독일 북부 낭만주의에 그 뿌리를 같이 한다. 낭만주의 자체가 표 주의나 신 표 주의처럼 실에 한 불만에서 시작된 것이기에 그들이 구축해 놓은 작품 세계가 앞서 살펴본 독일의 시 상황과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계승되어진 것으 로 보인다. 에 놀데(Emil Nolde)의 <최후의 만찬>과 G. 바젤리츠의 <드 스덴의 최후의 만찬>을 보면 두 작품 다 배경의 자연 풍경이 생략되면서 실의 묘사보 다 자기 자신이 실에 부여한 주 사고를 더 강조 하고 있다. 한 E.키르히 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격한 경제 성장과 정치의 혼란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 의 불안정한 실 감각을 나타내기 해 술 으로 변 형하여 애매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자연성의 환 을 창조한다. 이러하듯 그들은 과거의 신화나 설 혹은 문학이나 역사 인 사실 등 다분히 통 인 주제를 빌 어 인 것으로 재창출 한다. 주제나 내용은 자유 분방한 실의 묘사보다 자기 자신이 실에 부여한 주 사고로 시각미디어에서도 경제, 정치, 문화, 사회의 시 상황을 포 하여 상징 이고 교훈 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개인 이며 념 인 역사 방법으로 재창출 된 미디어콘텐츠 미술로 발 하 고 있다. 4.2 표현기법의 관계적 미디어콘텐츠 표 주의와 신표 주의 모두 이 의 미술사조에 한 반발 혹은 반작용에 의하여 창출되었다. 결과 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내 감정을 나타내기 해 거 한 캔 버스에 날카롭게 각이 지고 왜곡된 형태, 다양한 오 제, 원색의 강렬한 색채 비, 자극 이며 거친 붓 터치 를 사용하 다. E. 놀데의 거친 붓 터치는 G. 바젤리츠 로, 원색의 강렬함과 각이 지는 붓 터치로 인해 보는 이 의 감정을 자극하는 E.키르히 의 작품들은 페 (Rainer Fetting), 미덴도르 (Helmut Middendorf)등으로 연결 된다. 미디어콘텐츠에서도 표 주의의 특징 인 표 기법을 엿볼 수 있다. 왜곡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 는 상미디어의 다양한 시각 효과를 통해 개인의 내 감정을 표 하게 되었고 한 오 제 사용은 시각매 체의 표 기법을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게 하 다. 5. 결 론 두 미술 사조는 독일의 낭만주의 미술의 통성을 이 어왔음을 살펴보면, 실과 그것에 처해나가는 표 주의 기질은 시 가 바 어도 소멸되지 않았다. 다만 시 에 맞는 새로운 정신을 반 한 채 변형된 형식과 주제로 계속되고 있다. 정치 , 사회 , 문화 인 소용 돌이 속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자아를 규명하고자 하 는 속성이 구보다 강했던 사람들이 바로 표 주의자 들이었으며 이러한 강인함이 바로 독일의 통성을 잇 게 하는 원인 인 것이다. 20세기 현대미술에서 표현주의와 신표현주의 연관성 267 신표 주의는 지극히 독일 인 것을 강조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독일 이 아닌 요소들로 국제 인 환 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비 록 신표 주의가 독일의 통 미술을 계승하고 있지만 미술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상징 이고 교훈 인 시 상황을 포 하고 있다. 한 개인 , 념 , 역사 방법으로 재창출된 주제와 왜곡된 형태, 강렬한 색채는 상미디어의 다양한 시각 효과를 통해 개인 의 내 감정을 표 하고 오 제 사용은 시각매체의 표 기법을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게 하여 세계무 에 설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고 본다. 따라서 미술에 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만큼 다원성이 존재한다. 다원 성이란 고 미술과 미술 간의 경계, 술 장르 간 의 경계, 더 나아가 삶과 술의 경계를 무 뜨리려 했 던 수많은 도 의 결과들로 얻게 된 것들이다. 기존의 미술이 작가가 일방 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달하는 치 다면 오늘날은 람자가 스스로 주체 이고 자 율 인 시각으로 작품을 선택하고 감상하면서 직 참 여할 수 있는 미디어콘텐츠 시 로 바 어 가고 있다. 이는 미술에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요한 특성 의 하나가 되었다. 결국 이제는 과거와 같은 미술의 개 념과 가치 단으로는 오늘날의 다양한 사회와 문화의 경험과 표 이 불가능해졌다는 이야기다. 참 고 문 헌 [1] 김 나, “서양 미술의 기원(1880~1914)”, 시공 사, 1996. [2] 정 목, “독일 표 주의와 신표 주의 미술에 나 타난 통성과 시 정신”,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1992. [3] 고충환, “독일 표 주의 미술에 있어서 형식감정 의 차별성 연구”, 미학 술학연구 3,4권 1994. [4] 김홍섭, “독일미술사”, 이유, 2004. [5] 유로 미술 연구회, “ 미술 속으로”, 경, 2002. [6] 슐라미스베어, 김숙옮김, “표 주의”, 열화당, 2003. [7] 김 나, “독일표 주의 회화 : 다리 와 청기사 를 심으로”, 미술사연구논문집, 1996. [8] 하요 뒤히 , 최정윤 옮김, “표 주의”, 미술문화, 2007. [9] 이오연, “독일 신표 주의 미술의 형상성과 알 고리 연구”, 경기 학교 조형 학원, 석사논문, 2004. 저 자 소 개 정 경 철(Kyung-Chul Jeong) 정회원 ▪1996년 2월 : 한남 학교 학원 미술학석사 졸업 ▪2007년 8월 : 단국 학교 학원 미술학박사(Ph.D) 취득 ▪1995년 ~ 2011년 : 개인 13회 (서울, , 국)와 국내외 기획 참여 ▪2009년 3월 ~ 재 : 한남 학교 미술교육과 교수 < 심분야> : 미술작품 분석 평가, 미술교육, 미술 사, 동양미학 화론 전 민 경(Min-Kyung Jun) 정회원 ▪2009년 ~ 재 : 단국 학교 학원 미술학석사 과정 ▪2002년 ~ 2011년 : 개인 2회 (서울, 평택)와 국내외 기획 다수 참여 < 심분야> : 미술작품 분석 평가, 동ㆍ서양미술 사, 미술심리치료 << /ASCII85EncodePages false /AllowTransparency false /AutoPositionEPSFiles true /AutoRotatePages /All /Binding /Left /CalGrayProfile (Dot Gain 20%) /CalRGBProfile (sRGB IEC61966-2.1) /CalCMYKProfile (U.S. Web Coated \050SWOP\051 v2) /sRGBProfile (sRGB IEC61966-2.1) /CannotEmbedFontPolicy /Warning /CompatibilityLevel 1.4 /CompressObjects /Tags /CompressPages true /ConvertImagesToIndexed true /PassThroughJPEGImages true /CreateJDFFile false /CreateJobTicket false /DefaultRenderingIntent /Default /DetectBlends true /ColorConversionStrategy /LeaveColorUnchanged /DoThumbnails false /EmbedAllFonts true /EmbedJobOptions true /DSCReportingLevel 0 /EmitDSCWarnings false /EndPage -1 /ImageMemory 1048576 /LockDistillerParams false /MaxSubsetPct 100 /Optimize true /OPM 1 /ParseDSCComments true /ParseDSCCommentsForDocInfo true /PreserveCopyPage true /PreserveEPSInfo true /PreserveHalftoneInfo false /PreserveOPIComments false /PreserveOverprintSettings true /StartPage 1 /SubsetFonts true /TransferFunctionInfo /Apply /UCRandBGInfo /Preserve /UsePrologue false /ColorSettingsFile () /AlwaysEmbed [ true ] /NeverEmbed [ true ] /AntiAliasColorImages false /DownsampleColorImages true /ColorImageDownsampleType /Bicubic /ColorImageResolution 300 /ColorImageDepth -1 /ColorImageDownsampleThreshold 1.50000 /EncodeColorImages true /ColorImageFilter /DCTEncode /AutoFilterColorImages true /ColorImageAutoFilterStrategy /JPEG /ColorACSImageDict << /QFactor 0.15 /HSamples [1 1 1 1] /VSamples [1 1 1 1] >> /ColorImageDict << /QFactor 0.15 /HSamples [1 1 1 1] /VSamples [1 1 1 1] >> /JPEG2000ColorACSImageDict << /TileWidth 256 /TileHeight 256 /Quality 30 >> /JPEG2000ColorImageDict << /TileWidth 256 /TileHeight 256 /Quality 30 >> /AntiAliasGrayImages false /DownsampleGrayImages true /GrayImageDownsampleType /Bicubic /GrayImageResolution 300 /GrayImageDepth -1 /GrayImageDownsampleThreshold 1.50000 /EncodeGrayImages true /GrayImageFilter /DCTEncode /AutoFilterGrayImages true /GrayImageAutoFilterStrategy /JPEG /GrayACSImageDict << /QFactor 0.15 /HSamples [1 1 1 1] /VSamples [1 1 1 1] >> /GrayImageDict << /QFactor 0.15 /HSamples [1 1 1 1] /VSamples [1 1 1 1] >> /JPEG2000GrayACSImageDict << /TileWidth 256 /TileHeight 256 /Quality 30 >> /JPEG2000GrayImageDict << /TileWidth 256 /TileHeight 256 /Quality 30 >> /AntiAliasMonoImages false /DownsampleMonoImages true /MonoImageDownsampleType /Bicubic /MonoImageResolution 1200 /MonoImageDepth -1 /MonoImageDownsampleThreshold 1.50000 /EncodeMonoImages true /MonoImageFilter /CCITTFaxEncode /MonoImageDict << /K -1 >> /AllowPSXObjects false /PDFX1aCheck false /PDFX3Check false /PDFXCompliantPDFOnly false /PDFXNoTrimBoxError true /PDFXTrimBoxToMediaBoxOffset [ 0.00000 0.00000 0.00000 0.00000 ] /PDFXSetBleedBoxToMediaBox true /PDFXBleedBoxToTrimBoxOffset [ 0.00000 0.00000 0.00000 0.00000 ] /PDFXOutputIntentProfile () /PDFXOutputCondition () /PDFXRegistryName (http://www.color.org) /PDFXTrapped /Unknown /Description << /FRA /ENU (Use these settings to create PDF documents with higher image resolution for improved printing q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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